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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정씨

25~26 감귤시즌을 마무리합니다.

by 제주 정기자 2026. 4. 5.

 

[농부정씨] 흙내음 나는 제주 농부의 땀방울 기록.
농부정씨의 영농일기

길었던 25-26 시즌의 마침표,
달콤한 카라향 수확과 씁쓸한 농심(農心)

부제: 친한 형님 하우스에서의 3일, 투박한 과일에 담긴 수확의 기쁨과 현실

안녕하십니까, 제주농부 정기자입니다.

어느덧 2026년 4월의 훈풍이 제주 전역을 감싸고 있습니다. 제주 감귤 농가들에게 4월과 5월은 남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작년 가을 극조생 감귤을 시작으로, 추운 겨울 노지 귤, 한라봉, 천혜향으로 쉼 없이 달려온 '2025-2026 감귤 시즌'의 대장정에 비로소 마침표를 찍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하는 과일이 바로 오늘 이야기할 '카라향'입니다. 며칠 전, 평소 저를 많이 아껴주시는 동네 친한 형님의 하우스에 카라향 수확 일손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여, 3일간 팔을 걷어붙이고 구슬땀을 흘리고 왔습니다.

형님네 하우스 전경입니다. 가지가 찢어질 듯 무거운 열매를 지탱하기 위해, 파란 끈으로 가지를 일일이 천장에 매달아 둔 1년의 정성이 고스란히 보입니다.

1. 신비로운 생명력, 못생겨도 맛은 최고인 카라향

카라향(정식 품종명: 남진해)은 감귤류 중에서도 그 생물학적 특징이 아주 독특하고 강인한 녀석입니다. 보통의 귤은 봄에 꽃이 피고 그해 가을이나 겨울에 수확을 마칩니다. 하지만 카라향은 봄에 꽃이 피면, 해를 넘겨 무려 1년 가까이 끈질기게 나무에 매달려 있다가 이듬해 4~5월 봄에 수확을 합니다.

그래서 이맘때 하우스에 들어가면 아주 기막힌 진풍경이 벌어집니다. 새하얀 귤꽃이 피어나 진한 아카시아 향기를 내뿜는데, 바로 옆 가지에는 지난 1년간 익어온 주황색 카라향 열매가 탐스럽게 달려있는 모습을 볼 수 있죠. 새 생명의 잉태와 결실이 한 나무에서 상봉하는, 참으로 신비로운 품종입니다.


카라향 특유의 투박하고 울퉁불퉁한 껍질. 매끈한 천혜향과는 달리 거칠지만 깊은 매력이 숨어 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제 거친 장갑 위에 올려진 열매를 보십시오. 표면이 울퉁불퉁하고 꽤 투박하게 생겼습니다. 껍질을 까면 씨앗이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먹기 귀찮다고 하시는 분들도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큰 코 다칩니다. 1년을 꼬박 나무에서 버틴 이 녀석의 당도는 보통 14브릭스 이상으로, 만감류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극강의 단맛을 자랑합니다. 진한 단맛에 기분 좋은 산미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봄철 나른해진 입맛을 단번에 깨우는 데는 이만한 과일이 없습니다.

2. 3일간의 구슬땀, 바구니에 차오르는 수확의 카타르시스

본격적인 수확 작업은 고됨의 연속입니다. 1년간 정성껏 키운 열매가 상할세라 한 알 한 알 조심스럽게 가위질을 해야 합니다. 봄볕이 내리쬐는 하우스 안은 금세 후끈해지고, 등줄기를 타고 연신 땀이 흘러내립니다.

수레 위에 나란히 얹힌 빨간 바구니들. 땀을 비 오듯 쏟으며 이 긴 고랑을 수십 번 오가야 하루 작업이 끝납니다.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프지만, 수레 위에 올려둔 빨간 수확 바구니가 묵직하게 채워질 때마다 묘한 아드레날린이 솟구칩니다. 형님과 함께 고랑을 오가며 "형님, 올해 과수가 참 실하게 잘 빠졌수다"라며 농담을 주고받는 이 시간. 아무리 몸이 고단해도, 이 순간만큼은 농부만이 느낄 수 있는 순수한 '수확의 카타르시스'가 온몸을 감쌉니다. 제주에서 감귤수확할때는 주인은 선별을 하고, 어머님들은 귤을 따고, 감귤나무가 가지들이 많아 남자들에게는 고역입니다. 저처럼 품앗이 하는 광우(광주리)를 나르는 인부가 수확량에 따라 1~2명은 있어야합니다. 좀 많이 힘이 듭니다. ^^

컨테이너와 바구니를 가득 채운 주황빛 보석들. 지난 1년 365일의 비바람과 농부의 땀방울이 만들어낸 위대한 결실입니다.

3. 달콤한 열매 이면의 씁쓸한 현실: 25년 vs 26년의 가격 격차

컨테이너 박스에 탐스럽게 쌓인 귤을 보며 땀을 닦던 것도 잠시. 형님과 나무 그늘에 앉아 시원한 막걸리 한 캔을 나누며 농산물 시세 앱을 열어본 우리는, 이내 말없이 짙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습니다. 올해 카라향 산지 가격이 심상치 않기 때문입니다.

📊 2025 vs 2026 카라향 산지 시세의 냉혹한 현실 지난해인 2025년 시즌에는 생육기 잦은 비로 전체적인 생산량이 줄어 희소성이 생겼습니다. 덕분에 최상품 기준 3kg 한 박스 경매가가 35,000원~40,000원 선을 훌쩍 넘기며 농가 경제에 큰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올해(2026년)의 상황은 전혀 다릅니다.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인한 소비 심리 위축이 프리미엄 과일 시장에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작년 대비 수확량은 다소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산지 경매가는 20~30% 폭락한 25,000원대에서 힘겹게 거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비료값, 인건비, 농자재값은 작년 대비 무섭게 치솟았는데, 정작 농산물 가격은 뒷걸음질 치고 마는 이 기막힌 엇박자. "농사는 하늘이 짓고, 가격은 시장이 후려친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가슴을 후벼 팝니다. 가지가 휘어지도록 풍년을 맞고도 마냥 마음 편히 웃을 수 없는 것, 이것이 2026년 대한민국 농부들이 마주한 뼈아픈 현실입니다.

4. 그래도 우리는 내일 다시, 묵묵히 나무를 돌봅니다

3일간의 고된 작업을 마치고, 형님이 고생했다며 챙겨주신 못난이 카라향(파치) 한 컨테이너를 덜렁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흙투성이 작업복을 채 벗지도 않고, 그 투박하고 거친 껍질을 쓱쓱 까서 한 입 크게 베어 물어봅니다.

아, 눈물이 핑 돌 만큼 답니다. 입안 가득 터지는 달콤한 과즙이 3일간의 피로를 싹 씻어냅니다.

시장 가격이 폭락하여 애간장을 태우건 말건, 1년 내내 비바람과 태풍을 묵묵히 견뎌낸 이 자연의 열매는 결코 농부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농심(農心)이란 참으로 미련하고 우직합니다. 머리로 셈을 따져보면 남는 게 없는 헛장사임이 틀림없는데도, 이렇게 기가 막히게 달콤한 열매를 맛보고 나면 "그래, 내년에는 더 맛있고 튼실하게 키워봐야지"라며 또다시 굳은살 박인 손으로 전정가위를 집어 드니까요.

이 달콤하고도 씁쓸했던 카라향 수확을 끝으로, 제주의 길었던 2025-2026 감귤 시즌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이제 짧은 숨을 고르고, 다가올 뜨거운 제주의 여름을 대비해 다시 밭을 일구어야겠습니다. 올 한 해 땀 흘린 전국의 모든 농부님들, 진심으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겉은 투박해도 속은 꽉 찬 카라향을 닮고 싶은 제주농부 정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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